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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게임 입장

미궁은 정국이와 관련되어 있거나 지문만 보고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주의사항들을 반드시 정독 후 플레이 부탁드립니다.


문제의 답 중 영문 정답의 경우, 소문자만 가능하며, 정답을 아셨다면 맨 아래 박스에 정답을 입력하신 후 확인을 누르시면 됩니다.



답이 날짜인 경우 YYYYMMDD 6자리를 작성해 주세요.

ex) 정국이 생일→19970901

생각하신 답이 띄어쓰기가 있을 경우 상관없이 붙여 입력하세요.

ex) I love you → iloveyou

글에 포함된 사진과 영상들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봐주셔야 합니다.



힌트를 주고받는 것은 가능하나 지나치게 노골적인 힌트(정국이 솔로곡 제목 아는분 계세요? etc)를 공유하는 행위, 각 단계의 페이지 내용 전체를 캡쳐하여 업로드하거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행위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힌트 공유는 가급적 공개된 장소가 아닌 개인적인 연락망(DM 등)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무 어려우시면 포스타입 댓글 작성해주시면 답변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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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속 300km,



공기가 찢어지며 발생하는 진동이 헬멧 내부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눈앞의 풍경은 수묵화처럼 번져 나갔고, 이성의 영역은 지워진 지 오래였다. 남은 건 오직 오감을 넘어서는 야성적 감각뿐.


독일 작센링 서킷의 12번 코너.


아스팔트의 지열은 섭씨 45도를 웃돌고 있었고, 1,000cc V4 엔진이 내뿜는 열기는 다리 안쪽 피부를 익혀버릴 듯 펄펄 끓어올랐다.



레이싱 장면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다루듯, 정국은 오른손 손가락 끝으로 브레이크 레버를 아주 미세하게 다루었다.



남들이 100미터 전방에서 손가락을 얹을 때, 정국은 60미터 표지판을 통과할 때까지 스로틀을 쥐었다.

*스로틀 : 엔진 속도 조절 장치

"전정국, 여기서 브레이크를 안 잡습니다!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중계석 캐스터의 비명이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지만, 헬멧 속 정국의 세계는 고요하기만 했다.



끼이이익—!



타이어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며 노면을 거칠게 긁었다. 아스팔트에 진하게 새겨지는 검은 스키드 마크. 정국은 몸을 무릎 아래로 바짝 엎드렸다.

상체를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는 린인(Lean-in) 슬라이딩.


머신의 기울어진 뱅크 각도는 68도. 라이딩 슈트의 팔꿈치 슬라이더가 아스팔트 바닥에 긁히며 불꽃을 뿜었다.

코너의 정점을 파고드는 붉은 궤적.

타이밍을 조금만 놓쳐도 오토바이와 함께 공중으로 튕겨 나가는 부상의 공포가 짓눌렀지만, 정국의 눈동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후회는 트랙 뒤에 두고 왔다.

지금 이 순간, 아스팔트를 지배하는 건 오직 자신의 붉은 머신과 날카로운 브레이킹 라인뿐이었다.




0.001초의 찰나,



엔트리 번호 97번.



찰나의 틈새를 뚫고 붉은 궤적이 선두로 튀어 나갔다.

#2



경기장 피트 뒤편의 웨이트 트레이닝 룸은 미세한 땀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정국은 덤벨을 내려다보며 호흡을 고른 뒤 천천히 다시 손에 쥐었다.



“사람마다 본인 몸에 맞는 운동법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생각했을 때 전신을 굴려주는 게 좋지 않나”



웨이트 트레이닝 장면

후욱-, 후우-


짧게 끊어지는 호흡 사이로 덤벨이 다시 올라갔다.



단순히 한 부위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157kg의 쇠뭉치를 300km/h가 넘는 속도로 몰아붙이려면, 온몸이 그 무게와 속도를 견뎌낼 수 있어야 했다.


코너 진입 시 안전벨트도 없는 머신 위에서 라이더의 몸은 곧 유일한 브레이크였다.



"거기까지 해, 정국아. 오늘 아침 웜업 세션까지 두 시간도 안 남았다."


정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전담하는 트레이너 중 한 명인 호석이 문가에 기대어 캔 커피의 뚜껑을 열며 덤덤하게 말했다.



"두 세트만 더 하고요."

정국은 덤벨을 내리지 않은 채 낮게 읊조렸다. 땀방울이 턱끝에서 떨어져 고무 매트 위로 번졌다.



쿵-


마침내 덤벨을 내린 정국이 땀을 닦아내며 트레이닝 룸 구석 테이블로 걸어갔다. 윤기는 피트에서 챙겨온 도시락통과 닭 가슴살 샐러드를 테이블 위에 스윽 밀어주었다. 정국은 젓가락을 들어 고구마 하나와 닭가슴살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더니,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스포츠음료만 홀짝였다.

윤기가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며 툭 던졌다.


"정국 왤케 소식해?"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왤케 소식해?"



대화 장면

"....아까 먹었어여 행님."

정국이 머쓱하다는 듯 볼을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윤기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 먹고 또 먹는 거야?"


"운동 시작하기 전에 샌드위치 두 개 먹었거든요. 이건 그냥 진짜 맛만 본 거예요."


정국이 헤헤 웃으며 입가에 묻은 드레싱을 손등으로 대충 슥 문질렀다.


운동할 때와는 달리 먹을 것 앞에선 그저 잘 먹고 귀여운 동네 동생이었다. 윤기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정국의 어깨를 무심하게 툭 쳤다. 머신 위에 오르기 전, 저 긴장감 없는 모습은 정국이 가진 가장 무서운 무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동양인 라이더.



유럽이 지배해 온 무대에서 그 말은 오랫동안 '이방인' 또는 '신예'를 뜻했다. 바이크의 각도를 1도 더 눕힐 때마다, 혹은 남들보다 조금 뒤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전문가들의 시선에는 경악과 경계심이 동시에 어렸다.


하지만 정국에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남을 시기할 시간에 자신의 기어 수치를 확인하고 브레이킹 포인트를 1cm라도 더 앞으로 당기는 것이 정국의 방식이었다.



"바이크 데이터 봤어. 4번 코너 진입할 때 굳이 그렇게 타이어를 긁어가면서까지 라인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호석이 캔 커피를 홀짝이며 툭 던졌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러야 머신이 제대로 눕는 느낌이 들거든요."

정국이 땀으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정면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슈트 아래 가려진 어깨와 등줄기에는 과거 낙차 사고 때 얻은 수술 흉터가 붉은 지네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핏자국과 땀방울, 그리고 벼랑 끝에서의 브레이킹.

그것이 정국이 아스팔트 위에 지불해 온 통행료였다.



"동그리 쪽은 어제 프레임 새로 바꿨다. 타이어 접촉을 최고치로 뽑아내려고 하는 모양이야."

써클 동그리. 디펜딩 챔피언이자 에너지 팩토리의 황제. 오차 없는 자처럼 정교하게 수놓는 그의 레코드 라인은 '컴퓨터 레이싱'이라 불렸다. 완벽한 궤적, 계산된 브레이킹, 그리고 어떠한 변수도 허용하지 않는 철벽 방어.


"동그리 라인은 예쁘죠."

정국이 스트레칭 밴드를 손목에 감으며 피식 웃었다. 꾸밈없는, 지극히 정국다운 담백한 말투였다.


"근데 레이싱은 그림 그리기가 아니잖아요. 바이크 각도가 68도로 머신이 기울어지면요, 아무리 예쁜 라인이라도 결국 아스팔트에 갈려서 찌그러져요. 전 그냥... 머신이 튕겨 나가지 않는 한계선까지 바닥을 긁는 것뿐이에요."


"너 그러다 진짜 한 번 더 굴러. 3번 코너는 자갈밭 깊이가 얕아서 바이크 튀어 오르면 경기 더 못한다."


"구르면 다시 일어나면 되죠."

정국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번뜩였다.



남들은 공포에 짓눌려 손가락을 떨 때, 정국은 그 극단의 공포 속에서 머신과 완벽히 하나가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피트로 들어서자 1,000cc V4 엔진의 예열 소리가 서킷 전체를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붉은색 파니갈레 V4 S 머신이 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엔진의 진동이 정국의 발바닥을 타고 전율처럼 올라왔다. 정국은 헬멧을 깊게 눌러썼다.

#3



쿠웅-! 위이잉-!



레이싱 장면

폴 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한 초록불이 켜지는 순간, 1,000cc V4 엔진들이 포효하며 트랙으로 튕겨 나갔다.

* 폴 포지션 : 메인 레이스 출발위치 맨 앞자리


독일 작센링 서킷의 1번 코너. 피트에서 막 빠져나온 정국의 붉은 파니갈레 V4 S가 아스팔트 위로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갔다. 타이어 온도를 올리기 위해 자그마치 300km/h가 넘어가는 속도에서 머신을 좌우로 잘게 뒤흔들었다.



슥, 슥-



라이딩 슈트 밑단과 아스팔트가 아슬아슬하게 마찰하는 소리. 헬멧 내부로 들어오는 공기는 타이어 타는 메케한 냄새와 뜨거운 엔진 열기로 차올랐다.


"저게 말이 되는 각도냐고, 진짜."

피트 월 모니터를 지켜보던 석진이 바이크 분석 그래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화면에 뜬 바이크 뱅크 각도 수치가 순간적으로 66도를 찍더니, 이내 레드 존을 넘어서고 있었다.


[ BANK ANGLE : 68.2° ]


일반적인 라이더들의 뱅크 각도는 63도에서 65도 안팎. 하지만 정국에게 68도는 컨트롤이 시작되는 영역이었다.


"석진 형, 앞바퀴 드래그(저항)가 아주 미세하게 남는데, 압력 0.1바만 낮춰줘요."

스트레이트 구간을 질주하며 정국이 무전으로 덤덤하게 읊조렸다.


"미친놈…. 300km/h로 달리면서 압력 0.1바 차이를 느껴?"

석진은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었지만, 즉시 태블릿을 짚어 들고 셋업 값을 수정했다.


콰아아아아-!


2번 연속 S자 복합 코너 진입. 정국의 몸이 머신 좌측 아래로 바짝 엎드려 상체를 코너 안쪽으로 깊게 밀어 넣었다.


정국의 무릎 슬라이더와 팔꿈치 슬라이더가 아스팔트를 사정없이 긁어대며 노란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머신은 바닥에 닿을 듯 기울어져 있었다. 뒤 타이어가 그립을 잃고 밖으로 미끄러지려는 찰나, 정국은 자신의 체중을 앞에 실어 미끄러운 타이어를 강제로 제어했다.

원심력과 인력이 정국의 척추를 눌러왔다.


"들어간다...!"

피트 관람석에 있던 타 팀 스태프들조차 숨을 죽였다.


코너 중심부를 통과하는 순간, 아스팔트와의 거리는 단 3cm. 눈앞에서 자갈밭이 스쳐 지나갔다. 보통의 라이더라면 공포심에 손가락 끝이 떨리며 스로틀을 놓아버릴 순간,

정국의 손끝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남들이 한계를 느끼고 머신을 일으켜 세우는 바로 그 68도의 찰나, 정국은 스로틀을 오히려 10% 더 감아쥐었다.


카아앙-!


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검은 호를 그렸다. 폭발적으로 튀어 나간 붉은 파니갈레는 어느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가다듬었다. 코너를 빠져나온 정국은 방금 전까지 머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로웠다.


피트 월로 돌아온 정국이 헬멧을 벗으니 땀으로 범벅이 된 검은 머리칼이 이마에 엉겨 붙어 있었고, 가죽은 마찰에 그을려 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땠어?"

지민이 타월을 던져주며 물었다.

정국은 얼굴의 땀을 대충 문질러 닦아내고는, 모니터에 떠 있는 바이크 뱅크 각도 그래프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타이어 그립, 아직 2% 정도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너 방금 팔꿈치로 아스팔트 갈아먹으면서 돌았어, 정국아."


"알아요."

정국이 씩 웃었다. 방금 전까지 팔꿈치로 아스팔트를 긁던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태평했다.


"근데 형, 라인이 너무 예쁘잖아요. 0.01초라도 줄일 수 있으면 69도든 70도든 눕혀야죠. 그게 레이싱인데."

#4



결승 레이스 스타트 15분 전.


서킷의 메인 그리드는 수많은 방송 카메라와 미디어 리포터, 피트 크루들로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다. 머신의 온도를 보존하기 위해 타이어를 감싸 쥔 타이어 워머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고, 좌석에 가득 찬 10만 관중의 함성은 서킷 전체를 거대한 울림통처럼 뒤흔들었다.


"전정국 선수! 라이더 오브 더 데이(ROTD) 강력 후보이자 디펜딩 챔피언 동그리와 맞대결입니다! 부담감은 없으신가요?"

마이크를 들이대는 외신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 가만히 질문을 듣고 있던 정국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수한 렌즈가 정국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챔피언십 우승이 걸린 최종전이었다. 하지만 정국의 눈빛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정국 인터뷰 장면

"부담이요? 글쎄요..."

정국이 젖은 머리칼을 대충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동그리는 원래 잘 달리는 사람이고, 정석적으로 완벽한 라인을 그리잖아요. 제가 남의 시간이나 라인을 욕심낸다고 해서 내 머신이 더 빨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전 그냥…. 제가 오늘 연습했던 브레이킹 포인트를 1미터도 놓치지 않는 데만 집중하고 있어요."


"동그리 선수를 넘어설 비장의 공격적 코너링 전략이라도 준비되어 있습니까?"

기자의 연이은 추궁에 정국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전 전략 같은 건 잘 몰라요. 시속 300킬로미터가 넘어가면 머리로 계산할 시간 같은 건 없거든요. 그냥 스로틀을 감을 때 내 손가락이 확신을 가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죠. 트랙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후회는 전부 서킷 뒤에 두고 올 겁니다. 그래야 내려와서 밥도 맛있게 먹죠."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현지 취재진 사이에서 미세한 탄성이 흘렀다. 정국은 더 이상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 머신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동그리는 머신 옆에서 정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국의 예측하기 어려운 브레이킹과 바이크 각도. 정석적인 라인을 벗어나면서도 끝내 랩타임을 만들어내는 그 주행이 동그리에게는 가장 신경 쓰이는 변수였다.


그는 헬멧 너머로 낮게 읊조렸다.

"후회를 두고 온다라…. 정국아, 서킷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야생인 곳이다. 방심하면 후회하고 싶지 않아도 후회하게 될 거다."


삐- 삐- 삐-


그리드 퇴장 신호음이 울렸다. 인파가 빠져나가고, 오직 머신과 라이더만이 그리드 위에 홀로 남겨졌다.

태형이 정국의 파니갈레 V4 S 머신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타이어 워머를 벗겨내자, 매끈한 타이어가 검은 빛을 드러냈다.


"타이어 공기압 체크 완료했다. 정국아."

그가 정국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수많은 레이스를 함께 치러온 트레이너들과 라이더 사이의 굳건한 신뢰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늘 타던 대로 타. 머신은 네가 부러뜨리지 않는 한 끝까지 견딜 테니까."


"알았어요, 형."


정국이 헬멧을 깊게 눌러쓰며 바이저를 내렸다.


찰깍.


헬멧 내부에는 정국의 숨소리와 엔진의 진동만이 들렸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서킷에 서기 위해 지나온 나날을 회상해보게되는 출발선 앞.

정국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건 무엇일까?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

본인의 눈 앞에 있는 신호만이 존재한다.


이윽고 레드 라이트 다섯개가….


🔴 🔴 🔴 🔴 🔴


엔진의 굉음이 폭발적으로 고막을 찢었고 정국은 스로틀 레버를 타이트하게 감아쥐었다.



후회는 이미 트랙 뒤에 두고 왔다. 이제 남은 것은 튀어 나갈 준비를 마친 붉은 궤적뿐이었다.

#5



소등(Light Out)-!


레이스 스타트 장면

콰아아아아아아앙-!


22대의 1,000cc V4 머신이 내뿜는 굉음이 서킷 전체를 울렸다.

전광판의 레드 라이트가 소등됨과 동시에, 300마력이 넘는 괴물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아스팔트 위를 덮쳤다. 1번 코너를 향해 달리는 머신들의 대열 속에서 붉은색 파니갈레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시작됐습니다! 2026 최종전 독일 그랑프리, 메인 레이스 플래그 오프!"

현지 중계석의 캐스터가 헤드셋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옆자리에 앉은 해설위원 역시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선두는 출발이 좋았던 에너지 팩토리의 동그리! 하지만 보십시오! 그 바로 뒤, 1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전정국이 아웃라인을 버리고 인코너의 좁은 틈새를 완전히 파고듭니다!"


"저건 너무 깊어요! 코너 진입 속도가 시속 310km입니다. 저 속도로는 브레이킹 포인트를 놓칩니다! 자갈밭으로 날아가요!"

해설진의 비명이 생중계를 타고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100m 브레이킹 표지판 통과.


80m 표지판 통과.


다른 라이더들이 타이어 접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앞 레버에 손가락을 얹고 머신을 세우기 시작한 순간, 정국의 스로틀은 여전히 닫히지 않고 있었다.



60미터.


딥 브레이킹 장면

카아앙-!


정국의 두 손가락이 브레이크 레버를 강하게 당겼다.

뒤 타이어가 지면에서 붕 떠오르며 머신의 뒤쪽이 공중에서 비틀거렸다. 앞 타이어가 노면을 강하게 누르며 검은 연기와 함께 메케한 고무 타는 냄새를 뿜어냈다.


"말도 안 됩니다! 딥 브레이킹! 전정국,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머신 제어가 안 돼요!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아니요! 제어하고 있습니다! 머신을 눕힙니다!"

정국의 관자놀이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헬멧 너머로 보이는 동그리 머신의 뒤바퀴와 단 5cm의 틈새. 정국은 상체를 바닥으로 던지듯 린인 자세를 취하며 뱅크 각도를 강제로 눕혔다. 뒷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노면 위를 미끄러졌다.


끼이이이익-!


코너 중심부까지 브레이크의 압력을 유지한 채 정국은 머신을 코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붉은 파니갈레가 동그리의 파란색 머신 옆구리를 칼날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의 헬멧 창 너머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리는 것이 정국의 눈에 찰나처럼 담겼다.


"파고듭니다! 전정국! 1번 코너에서 동그리를 찍어 누르며 선두로 올라섭니다!"


"이게 전정국입니다! 브레이크를 끝까지 가져갑니다! 동그리의 안쪽을 완전히 파고들었어요!"

첫 번째 랩부터 터져 나온 초현실적인 추월에 10만 관중석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하지만 피트 월에서 이를 지시하던 남준의 표정은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모니터에 표시된 프론트 타이어 온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센서 수치는 이미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무 위험했다.

#6



레이스 14번째 랩.

섭씨 48도까지 치솟은 아스팔트 지열은 타이어를 사정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정국의 선두 독주가 이어졌지만, 컴퓨터처럼 정교한 라인을 그리며 추격해 온 2등과의 거리는 단 0.2초 차.


3번 깊숙한 U자형 코너.

동그리가 정국의 아주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인코너로 머신을 밀어 넣었다. 깔끔하고 오차 없는 챔피언의 레코드 라인. 찰나의 순간 선두를 빼앗겼다.


'여기서 주춤하면 스트레이트 구간에서 완전히 밀린다.'

정국의 머릿속에 계산은 없었다. 머신의 움직임과 노면의 감각만이 손끝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정국은 탈출 속도를 확보하기 위해 스로틀을 더 열었다.


"전정국, 곧바로 재추월 시도! 하지만 타이어 마모가 심합니다! 공간이 부족해요!"

뱅크 각도 68도. 팔꿈치 슬라이더가 아스팔트 연석을 사정없이 긁어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오버 스피드였다. 한계를 넘어선 원심력이 머신을 트랙 밖으로 밀어냈다.



슬립다운 사고 장면

콰콰콰콰쾡-!


"슬립다운! 전정국, 미끄러집니다!"

앞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고 꺾이면서 157kg의 파니갈레 머신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정국의 몸 역시 아스팔트 위를 무서운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슥-!


라이딩 슈트 가죽이 아스팔트에 마찰하며 맹렬한 연기와 함께 고열을 발생시켰다. 웅크린 채 자갈밭으로 쓸려나가는 찰나. 공중으로 튀어 오른 머신의 파츠들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머신이 정국의 몸 위로 떨어질 뻔한 아찔한 위기.


"아... 안 됩니다! 전정국! 우승 경쟁에서 이탈합니다!"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갈밭에 처박힌 정국은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충격으로 왼쪽 어깨와 전완근 슈트가 찢어져 붉은 핏자국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헬멧 내부로 들어온 먼지와 흙더미 속에서 정국은 거칠게 숨을 가빠 쉬었다.


'움직여라…. 제발.'

시야가 노랗게 번졌다. 전신을 찌르는 통증. 미소 짓던 평소의 담백함은 지워지고, 정국의 눈동자 속에는 아스팔트를 삼켜버릴 듯한 지독한 야성이 끓어올랐다.


정국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들어간다."



헬멧 속에서 새어 나온 나직하고 피비린내 나는 한마디.


순위는 이미 최하위권인 18위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추락한 정국에게 남은 선택은 멈추는 것인가, 다시 시작하는 것인가?

#7-1



"말도 안 되는 집념입니다! 전정국, 오른쪽이 완전히 파손된 머신을 끌고 일어납니다!"


"하지만 머신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연기가 나고 있어요! 프론트 페어링이 완전히 파손되었습니다!"

자갈을 짓밟는 부츠 소리가 거칠었다. 어깨에서 고통이 밀려왔지만, 정국은 망설임 없이 바닥에 누워 있는 머신을 일으켰다.


"시동…. 시동 걸려라…. 제발..."

클러치를 잡고 몸무게를 실어 모터를 돌렸다.


쿠르르릉... 콰르릉!


다행히 1,000cc 엔진이 거친 비명을 지르며 다시 깨어났다. 머신 오른쪽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찢겨 나갔고, 핸들바는 안쪽으로 꺾여 있었다.

정국은 다시 머신에 올라타 서킷 위로 진입했다.


그러나 변속을 시도하는 순간,



콰가가각—!



머신 하부에서 불꽃과 함께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엔진 오일 압력 경고등이 계기판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파손된 머신 장면

"아…. 안 돼…. 움직여라..."

스파크가 튀는 핸들을 쥐고 어떻게든 엑셀을 비틀어 보았지만, 머신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킷 위에서 미끄러졌다.



피트 리턴 신호.

정국을 향해 붉은 깃발과 함께 오렌지 볼 피트인 깃발을 내흔들었다.


"전정국 선수, 속도가 줄어듭니다…. 3번 코너 탈출구에 머신을 세웁니다…. 더 이상의 주행은 라이더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아…. 이렇게 2026 그랑프리가 막을 내리나요..."


피트 라인 구석, 안전 펜스 너머에 기계를 세운 정국이 핸들 위에 이마를 묻었다.


치이이익—

과열된 엔진 블록 위로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10만 관중의 환호도 들리지 않았다. 동그리의 머신이 체커기를 향해 달려가는 소리마저 멀게만 느껴졌다.


피트 크루들이 스쿠터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엔지니어는 붉게 멍들어 있는 정국의 어깨와 연기를 내뿜는 머신을 보자마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정국아... 고생했다. 내려오자. 프레임이 아예 나갔어."

석진이 덤덤하게,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정국의 어깨를 짚었다.


정국은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땀과 먼지가 뒤섞인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형."


"브레이크... 조금만 더 늦게 잡을 걸 그랬나 봐요."


"너 미쳤어? 거기서 더 늦게 잡았으면 너 진짜 죽었어."

석진의 타박에 정국은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지친 얼굴이었지만 표정만큼은 담담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정국은 부축을 마다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서킷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자신이 긁어낸 짙은 검은 스키드 마크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정국은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피트 쪽으로 발을 옮겼다.

#7-2



머신은 측면이 박살 나고 손잡이 끝이 깎여 나갔지만, 다행히 엔진은 여전히 불을 뿜으며 겔겔거리고 있었다.

정국은 짓눌린 어깨를 내던지듯 머신을 일으켜 세웠다. 안전요원들이 그를 말리려 달려왔지만, 정국은 그들을 손으로 팍 쳐내며 클러치를 잡았다.


"말도 안 되는 집념입니다! 전정국, 오른쪽이 완전히 파손된 머신을 끌고 다시 서킷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차체가 비틀어져 있어요! 저 상태로 달리는 건 고문입니다!"

남준이 모니터 하단의 스피드 데이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찢어진 라이딩 슈트 사이로 정국의 어깨에서 피가 배어 나와 붉은 파니갈레 차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머신의 부품 하나가 날아가 버려, 직선 구간에서 시속 300km를 넘길 때마다 차체 전면부가 사정없이 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국의 스로틀은 단 한 번도 주춤하지 않았다.


'남 탓할 필요 없다. 내가 브레이킹 포인트를 미스한 거니까.'

정국은 핸들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더했다. 찢어진 피부에서 통증이 올라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핸들을 더 세게 움켜쥐며 머신이 비틀거릴 때마다 몸을 더 깊게 눌렀다.


18위... 15위... 12위.


콰아아아앙-!


정국은 코너마다 다른 라이더들보다 10m 늦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차체가 미끄러질 때마다 찢어진 슈트 팔꿈치로 바닥을 문지르며 머신을 강제로 세워 일으켰다.


"보이십니까?! 7번 코너에서 3대를 한 번에 추월합니다!" "전정국! 저 선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랩 타임이 넘어지기 전보다 오히려 0.3초 더 빠릅니다!"


“벼랑 끝에 섰던 전정국 선수의 돌파법은 무엇일까요?”


“무엇이긴요! 브레이크가 없는 사람처럼 달리는거죠!”


찢어진 슈트에서 피가 흘렀지만 정국은 멈추지 않았다. 후회 따위는 트랙 뒤에 버렸다고 했던 자신의 고백처럼, 정국의 머릿속에는 오직 눈앞에 보이는 앞차의 뒤 타이어를 씹어 삼키겠다는 야성만 남아있었다.



남은 랩 수 3랩.

5위... 3위... 마침내 정국의 붉은 머신이 디펜딩 챔피언 동그리의 등 뒤까지 육박했다.



브레이크는 늦게. 시선은 앞차에.



손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8



파이널 랩(Final Lap).

서킷 전체가 관중들의 비명과 환호성으로 뒤흔들렸다.

선두 동그리, 그리고 그 뒤를 0.05초 차로 턱밑까지 바짝 붙은 전정국. 부서진 붉은 머신에서 불꽃이 튀었다. 핏자국이 묻은 정국의 슈트가 동그리의 백미러를 가득 채웠다.


'괴물 같은 놈...'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석적인 라인으로 방어벽을 쳤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정국의 압박이 점점 거세졌다.


마지막 13번 코너. 피니시 라인을 앞둔 마지막 승부처.

동그리는 인코너 라인을 완벽히 블로킹하며 틈새를 주지 않았다. 컴퓨터 같은 라인. 정국이 파고들 자리는 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동그리, 인코너를 완전히 닫았습니다! 전정국, 파고들 공간이 없습니다! 이렇게 레이스가 끝나나요?!"

그 순간, 정국은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 차체를 밖으로 크게 틀었다.


정국이 선택한 건 크로스 오버 라인이었다.

정국은 코너 탈출 속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 머신을 한계까지 눕혔다.


뱅크 각도 68.5도.


앞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무릎과 팔꿈치 슬라이더가 연달아 노면을 스쳤다. 정국은 그 상태에서도 스로틀을 놓지 않았다.


카아아앙-!


동그리가 스로틀을 감는 바로 그 순간, 정국의 파니갈레가 아웃라인을 크게 그리며 파란 머신 옆으로 치고 나왔다.


"아웃코너에서의 린인 슬라이딩! 파고듭니다! 파고듭니다!" "전정국! 마지막 코너 탈출 속도가 시속 15km 더 빠릅니다!"

피니시 라인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메인 스트레이트.


두 대의 머신이 메인 스트레이트를 내달렸다. 정국은 부서진 스로틀을 부러뜨릴 듯 끝까지 감아쥐었다. 땀과 핏방울이 창 내부를 적셨지만, 정국의 시선은 피니시 라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피니시 직전 장면

슉-!

체커플래그가 펄럭였다.



0.001초.



단 0.001초의 차이로, 붉은 궤적이 피니시 라인을 먼저 통과했다.


"체커플래그! 깃발을 듭니다! 최종전 우승! 전정국! 하위권 추락을 딛고 마지막 코너에서 대역전극을 완성합니다!"

중계석의 캐스터와 해설자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10만 인파가 일제히 전정국의 이름을 외쳤다.


“전정국! 전정국!”

헬멧 안쪽으로 거친 숨이 쏟아졌다. 그리고 천천히, 핸들에서 한 손을 놓았다.


체커기가 다시 한번 펄럭였다.



68도의 한계를 넘어섰던 순간도, 18위까지 추락했던 순간도, 마지막 0.001초도 모두 지나갔다.


디팬딩 챔피언을 쓰러뜨린 전정국이 어떤 칭호를 갖게될지는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9



피트 아웃 로드 전체가 미친 듯한 환호성으로 진동했다.


레이스가 끝난 뒤 쿨다운 랩을 마치고 돌아온 붉은 파니갈레 머신이 차갑게 식어가며 딱, 딱 금속음을 냈다. 오른쪽 차체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긁혀 있었고, 타이어 표면은 군데군데 뜯겨 나가 있었다.

정국은 1위 표지판 앞에 머신을 세웠다.


10만 관중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서킷이 터져나갈 듯 함성을 내질렀다. 크루들이 달려와 그를 번쩍 들어 올리려 했지만, 정국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덤덤히 걸어 나왔다.


"정국아, 괜찮아?! 어깨 피 나는 거 봐라!"

지민이 헐떡이며 달려와 정국의 슈트를 살폈다. 쓰러질 당시 마찰로 찢겨 슈트 가죽이 찢겨 있었고 그 아래로 피멍이 붉게 올라와 있었다.


레이스 후 정국 장면

"괜찮아요, 형. 뼈는 멀쩡해요. 슈트가 고생했지 뭐."

정국이 찢어진 가죽 슈트을 벗으며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 트랙 위에서 한계를 넘나들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평온한 얼굴이었다.



곧이어 세계 스포츠 생중계 마이크와 무수한 카메라 렌즈가 정국의 입가를 향해 쇄도했다.


"전정국 선수! 3번 랩에서의 아찔한 슬립다운 위기, 18위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파이널 랩 마지막 코너 아웃코너 68.5도 린인 슬라이딩으로 대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현장 리포터의 터질 듯한 목소리에 정국은 헬멧을 벗어 머신 기름탱크 위에 올려놓았다. 땀으로 엉킨 머리칼을 대충 손으로 털어내고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한 정국이 마이크를 향해 조용히 입을 뗐다.


"음... 일단 너무 힘들고요. 다리랑 어깨가 좀 쑤시네요."

현장에 모인 취재진 사이에서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


"많은 분들이 제가 뭐 엄청난 각오나 위대한 전략으로 역전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넘어지고 나서 '아, 큰일 났다. 트레이너 형들한테 또 혼나겠네' 그 생각부터 들었어요."

정국은 자신을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브레이킹 포인트를 잘못 잡아서 미끄러진 거니까 남 탓할 건 없었죠. 옛날에는 실수하면 그 순간에 계속 붙잡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생각해요. ‘내가 못 했구나.’ 그러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사람이 엄청 단순해졌어요. 못하는 것도 그냥 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트랙에 다시 들어갈 땐 그냥... 여기까지 와서 팬분들 보시는데 어설프게 달리고 내려가면 나중에 밥 먹을 때 너무 후회될 것 같더라고요. 후회는 트랙 뒤에 두고 오기로 했으니까요. 그냥 핸들 잡은 손가락에 힘주고 스로틀을 끝까지 감았어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정국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디펜딩 챔피언 동그리가 다가와 정국의 찢어진 슈트 어깨를 툭 쳤다.


"정국아. 너 오늘 라인은 미쳤었어. 아웃에서 파고드는 건... 컴퓨터로 계산해도 안 나오는 라인이다."

그의 말에 정국이 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형이 인코너를 너무 잘 막으셔서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튀어 나간 거예요. 라인이 워낙 완벽해서요, 안 눕히고는 들어갈 틈이 없더라고요."



두 라이더의 손이 단단히 맞잡혔다.


"다음엔 안 져."



정국이 피식 웃었다.

"그럼 다음엔 제가 더 빨리 달릴게요."

#10



시상식이 준비되는 동안, 서킷 전광판과 모터사이클 공식 앱에는 투표결과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 VOTE YOUR 'RIDER OF THE DAY' ]


단순히 우승자에게 주는 상이 아니었다. 레이스 전반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레이스를 펼친 '단 한 명의 라이더'를 팬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특별한 상이었다.


전광판에 빛이 들어오자마자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10%...

20%...

50%...


띠링-!


화려한 트럼펫 소리와 함께 메인 전광판에 거대한 글자가 떠올랐다.


Rider of the Day 결과

OFFICIAL WINNER OF ROTD

JEON JUNGKOOK (NO.97)

[ VOTES : 74.8% ]


숫자가 전광판에 떠오르는 순간,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함성이 터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18위에서 1위까지, 믿을 수 없는 역전극을 만들어낸 라이더!"


팬들이 붙혀준 별명은 무시무시한 경기능력과는 정반대로 달콤하고 귀여운 이름이라죠?


"팬들이 선정한 오늘의 영웅! Rider Of The Day는 전정국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관중석 곳곳에서 붉은 플래카드와 응원봉이 물결쳤다.


포디움 맨 꼭대기에 올라선 정국에게 ROTD 트로피가 전달됐다. 묵직한 크리스탈 글라스 안에는 붉은 스키드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핑크색 토끼인형을 든 어린이부터 정국의 빨간 슈트를 닮은 옷을 입은 청년, 어르신 할 것 없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전정국! 전정국!”

곳곳에서 시작된 함성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졌다.

시상식 장면

정국은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트로피를 쳐다봤다.


팡-!


샴페인이 공중으로 터져 나가며 시상대를 적셨다. 정국은 샴페인을 머리에 뒤집어쓰며 아이처럼 맑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체커기가 다시 한번 펄럭였다.



오늘 독일의 아스팔트 위에 남은 것은 정국의 붉은 궤적이었다.




그랑프리가 끝난 지 사흘 뒤.


축제의 열기가 싹 빠져나간 밤의 독일은 적막했다. 승리의 환호성도, 샴페인 냄새도 조용히 바람에 날아가 버린 공간.

툭, 툭.

아무도 없는 트레이닝 룸, 덤벨이 바닥에 닿는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정국은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 다시 덤벨을 쥐고 있었다. 굵은 땀방울이 턱끝을 타고 떨어져 매트를 적셨다. 챔피언 트로피와 ROTD 트로피는 피트 한쪽 진열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너 미쳤냐? 우승한 지 사흘밖에 안 됐다. 당장 병원 가서 물리치료나 받아."

문가에 기대선 태형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형."

정국이 덤벨을 바닥에 내려두고 숨을 거칠게 쉬며 돌아보았다.


"우승했다고 내일 브레이킹 포인트를 1미터 더 뒤로 당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정국이 타월로 목덜미의 땀을 문지르며 맑게 웃었다.


"다음 주 카타르 서킷은 직선주로가 더 길어요. 엔진 출력 셋업도 새로 잡아야죠. 아, 그리고 3번 코너 진입할 때 뱅크각 69도 도전해 봐도 돼요?"


"미친 소리 하지도 마. 내가 너 때문에 수명이 5년은 줄겠어."

그는 머리를 짚으며 툴툴거렸지만, 이미 그의 손에는 카타르 서킷의 계기판 데이터 파일이 들려있었다.



정국은 피트 밖으로 걸어 나왔다.


텅 빈 서킷의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붉은 달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며칠 전 자신의 머신이 긁고 간 검은 스키드 마크가 여전히 트랙 위에 진하게 남아있었다.


정국은 서킷의 바람을 향해 깊게 숨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정국의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독일의 아스팔트 위에 남은 붉은 궤적은 이제 다음 서킷으로 이어질 차례다.

미궁게임 완료 카드

미궁 탈출을 축하합니다!

위 사진을 저장하여 #KKUTOGP 해시태그로 미궁 탈출을 알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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