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피트 뒤편의 웨이트 트레이닝 룸은 미세한 땀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정국은 덤벨을 내려다보며 호흡을 고른 뒤 천천히 다시 손에 쥐었다.
“사람마다 본인 몸에 맞는 운동법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생각했을 때 전신을 굴려주는 게 좋지 않나. 예를 들면 이 운동..?”
후욱-, 후우-
짧게 끊어지는 호흡 사이로 덤벨이 다시 올라갔다.
단순히 한 부위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157kg의 쇠뭉치를 300km/h가 넘는 속도로 몰아붙이려면, 온몸이 그 무게와 속도를 견뎌낼 수 있어야 했다.
코너 진입 시 안전벨트도 없는 머신 위에서 라이더의 몸은 곧 유일한 브레이크였다.
"거기까지 해, 정국아. 오늘 아침 웜업 세션까지 두 시간도 안 남았다."
정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전담하는 트레이너 중 한 명인 호석이 문가에 기대어 캔 커피의 뚜껑을 열며 덤덤하게 말했다.
"두 세트만 더 하고요."
정국은 덤벨을 내리지 않은 채 낮게 읊조렸다. 땀방울이 턱끝에서 떨어져 고무 매트 위로 번졌다.
쿵-
마침내 덤벨을 내린 정국이 땀을 닦아내며 트레이닝 룸 구석 테이블로 걸어갔다. 윤기는 피트에서 챙겨온 도시락통과 닭 가슴살 샐러드를 테이블 위에 스윽 밀어주었다. 정국은 젓가락을 들어 고구마 하나와 닭가슴살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더니,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스포츠음료만 홀짝였다.
윤기가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며 툭 던졌다.
"정국 왤케 소식해?"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왤케 소식해?"
"....아까 먹었어여 행님."
정국이 머쓱하다는 듯 볼을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윤기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 먹고 또 먹는 거야?"
"운동 시작하기 전에 샌드위치 두 개 먹었거든요. 이건 그냥 진짜 맛만 본 거예요."
정국이 헤헤 웃으며 입가에 묻은 드레싱을 손등으로 대충 슥 문질렀다.
운동할 때와는 달리 먹을 것 앞에선 그저 잘 먹고 귀여운 동생이었다. 윤기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정국의 어깨를 무심하게 툭 쳤다. 머신 위에 오르기 전, 저 긴장감 없는 모습은 정국이 가진 가장 무서운 무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동양인 라이더.
유럽이 지배해 온 무대에서 그 말은 오랫동안 '이방인' 또는 '신예'를 뜻했다. 바이크의 각도를 1도 더 눕힐 때마다, 혹은 남들보다 조금 뒤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전문가들의 시선에는 경악과 경계심이 동시에 어렸다.
하지만 정국에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남을 시기할 시간에 자신의 기어 수치를 확인하고 브레이킹 포인트를 1cm라도 더 앞으로 당기는 것이 정국의 방식이었다.
"바이크 데이터 봤어. 4번 코너 진입할 때 굳이 그렇게 타이어를 긁어가면서까지 라인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호석이 캔 커피를 홀짝이며 툭 던졌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러야 머신이 제대로 눕는 느낌이 들거든요."
정국이 땀으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정면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슈트 아래 가려진 어깨와 등줄기에는 과거 낙차 사고 때 얻은 수술 흉터가 붉은 지네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핏자국과 땀방울, 그리고 벼랑 끝에서의 브레이킹.
그것이 정국이 아스팔트 위에 지불해 온 통행료였다.
"동그리 쪽은 어제 프레임 새로 바꿨다. 타이어 접촉을 최고치로 뽑아내려고 하는 모양이야."
써클 동그리. 디펜딩 챔피언이자 에너지 팩토리의 황제. 오차 없는 자처럼 정교하게 수놓는 그의 레코드 라인은 '컴퓨터 레이싱'이라 불렸다. 완벽한 궤적, 계산된 브레이킹, 그리고 어떠한 변수도 허용하지 않는 철벽 방어.
"동그리 라인은 예쁘죠."
정국이 스트레칭 밴드를 손목에 감으며 피식 웃었다. 꾸밈없는, 지극히 정국다운 담백한 말투였다.
"근데 레이싱은 그림 그리기가 아니잖아요. 바이크 각도가 68도로 머신이 기울어지면요, 아무리 예쁜 라인이라도 결국 아스팔트에 갈려서 찌그러져요. 전 그냥... 머신이 튕겨 나가지 않는 한계선까지 바닥을 긁는 것뿐이에요."
"너 그러다 진짜 한 번 더 굴러. 3번 코너는 자갈밭 깊이가 얕아서 바이크 튀어 오르면 경기 더 못한다."
"구르면 다시 일어나면 되죠."
정국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번뜩였다.
남들은 공포에 짓눌려 손가락을 떨 때, 정국은 그 극단의 공포 속에서 머신과 완벽히 하나가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피트로 들어서자 1,000cc V4 엔진의 예열 소리가 서킷 전체를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붉은색 파니갈레 V4 S 머신이 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엔진의 진동이 정국의 발바닥을 타고 전율처럼 올라왔다. 정국은 헬멧을 깊게 눌러썼다.